
무대포
요즘 제 삶을 설명하는 단어 하나를 찾으라면 아마 무대포일 것입니다.
계획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준비도 부족합니다. 가진 것도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현실은 무겁고, 삶은 버겁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하나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지금 형편에 그게 가능합니까?" "준비는 되었습니까?" "무엇을 보고 시작하는 겁니까?"
생각해 보면 저 역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예전의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역에도 계획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고, 기대가 있었습니다. 나름의 계산도 있었고, 결과를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무너지고,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약하며,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불확실하다는 것을.
지금 제 앞에 놓인 현실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새벽에 일터로 향합니다. 여전히 노동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현실이 좋아지면 하나님도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역이 회복되면 하나님도 다시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믿음도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상황을 먼저 바꾸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제 안에 질문 하나를 남기셨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나와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믿음은 꽤 무대포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곳을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 서서 지팡이를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무모하다고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제가 시작하려는 하나님 이야기도 어쩌면 무대포인지 모릅니다.
준비가 끝난 것도 아닙니다.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현실이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시 하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사역을 하려 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려 했습니다. 지금은 빈손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무대포는 조금 다릅니다.
나를 믿는 무대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무대포입니다.
내 열심을 믿는 무대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무대포입니다.
어쩌면 인생 후반전의 믿음은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 많이 준비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이 되는 것.
오늘도 제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무대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무대포가 예전의 확신보다 더 평안합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제가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Delight | 하나님이 좋아졌습니다
'Delight'는 기쁨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편 37:4)
시편 37편 4절의 NIV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Take delight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Psalm 37:4, NIV)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안에서 기쁨을 누려라. 그러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여기서 "Take delight in the LORD"는 단순히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명령을 넘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라.
하나님을 가장 큰 만족으로 삼으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라.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라.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