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하나님의 방식 ③

by Church, The Bridge 2026. 7. 7.

하나님은 왜 모세를 광야에 숨기셨을까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모세의 광야 40년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모세가 곧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억압받는 동족을 보고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때가 되었다'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모세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그것도 1년이 아니라 40년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그렇게 오랫동안 광야에 머물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지도자가 부족해서 준비하지 못하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모세가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신뢰했습니다.
정의를 사랑했지만,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모세는 양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실패라고 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읽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숨기고 계셨습니다.
숨긴다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열매는 땅속에서 자랍니다.
씨앗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싹을 틔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하십니다.
광야는 모세를 잊게 만든 시간이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애굽에서는 명령하는 법을 배웠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왕궁에서는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지만,
광야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애굽에서는 힘을 믿었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때를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40년 후 하나님은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모세의 반응입니다.
젊은 모세는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난 모세는 말합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감이 없어진 모습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광야를 싫어합니다.
빨리 결과가 보이기를 원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내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광야로 이끄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은 날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깊게 만드시는 시간입니다.
모세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세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서 감추셨지만,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한 번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그런 광야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멈췄다고 말하는 시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을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시간을 통해,
드러날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침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준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누군가를 광야에 숨기고 계실지 모릅니다.
세상이 잊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에서 빚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숨겨 두셨던 사람을 세상 가운데 다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숨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늦추거나, 무너뜨리거나, 감추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