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기다리게 하셨을까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상.
순종의 사람.
약속을 받은 사람.
우리는 그렇게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읽다가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런데 약속은 주어졌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 시간을 믿음의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행동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왜 시험하셨을까요?
왜 이렇게 긴 시간을 허락하셨을까요?
혹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던 것일까요?
저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하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다리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안에서 '아브라함의 가능성'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처음 아브라함은 아직도 자기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약속은 받았지만,
그 약속을 이루는 방법은 여전히 자신의 계산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제안을 받아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법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단지 아들을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시간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걷어 내고 계셨습니다.
백 세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몸도,
상황도,
가능성도 모두 끝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약속을 이루겠다."
이것은 너무 늦은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누구도 이삭을 아브라함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빨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빨리 이루는 것보다,
누가 영광을 받을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기다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의 기다림보다,
기다림 속에서도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늦으실까?"
그러나 성경은 다시 질문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늦으신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를 준비하고 계신 것일까?"
아브라함의 인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키며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다리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감당할 사람으로 빚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아브라함은 아들만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주고 싶으셨던 가장 큰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기 위해 25년을 기다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만약 지금이 요셉의 감옥이라면 (0) | 2026.07.07 |
|---|---|
| 하나님의 방식 ② (0) | 2026.07.07 |
| P.S 무너진 예배는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 예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0) | 2026.07.07 |
| 이제 저부터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세우시는 예배」를 마치며 (0) | 2026.07.07 |
| 집으로 돌아온 예배자 / 무너진 예배는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⑤ (0) | 2026.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