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야곱을 부수셨을까
성경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사람들을 쉽게 사용하지 않으실까?
왜 기다리게 하시고,
왜 광야를 지나게 하시며,
왜 때로는 무너지게 하실까?
야곱을 보면 그 질문은 더 커집니다.
야곱은 누구보다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장자권도 얻었고,
아버지의 축복도 얻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자신의 지혜로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얍복강에서 야곱과 씨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주 놀라운 장면을 기록합니다.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창세기 32:25)
왜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을까요?
왜 굳이 그의 몸을 상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다치게 하려는 분도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평생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평생 자신의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머리로 계산했고,
손으로 붙잡았으며,
능력으로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삶의 방식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그날 이후 평생 절뚝거리며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상처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로 사용하셨습니다.
절뚝거리는 다리는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흔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상처 없는 삶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통해 사람을 낮추시고,
낮아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야곱은 그날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야곱은 '붙잡는 자'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사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강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능력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빚으십니다.
우리는 상처가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그 상처를 통해 우리를 더 깊은 은혜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며 얍복강을 건넜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전보다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때부터 야곱이 가장 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은,
그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이 아니라, 야곱이 평생 붙들고 살던 자기 힘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다시 세우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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