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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집으로 돌아온 예배자 / 무너진 예배는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⑤

by Church, The Bridge 2026. 7. 7.

예배는 어디에서 완성될까요?
성전일까요.
교회일까요.
아니면 예배당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하셨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는 자유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그는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점점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재산을 잃었고,
사람도 잃었고,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렸습니다.
돼지를 치는 들판에서 그는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예배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탕자는 먼저 집으로 뛰어간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그는 집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아직 아들이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먼저 달려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변명을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잘못을 따져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먼저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고,
잔치를 열어 주셨습니다.
예배는 여기에서 완성됩니다.
예배는 죄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이것이었습니다.
에덴에서는 하나님을 떠났고,
이사야는 하나님을 다시 보았으며,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 앞에서 은혜를 구했고,
느헤미야 시대에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완성하십니다.
"아버지께 돌아오라."
예수님은 예배를 가르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예배자를 아버지께 다시 데려오러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그 길을 여신 사건입니다.
죄 때문에 돌아갈 수 없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의무가 아닙니다.
돌아온 자녀의 기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보여 드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는 자녀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저는 더브릿지교회가 바로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정죄받지 않고,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교회.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경험하는 교회.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며
"오늘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가 아니라,
"오늘 집에 다녀왔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교회.
저는 하나님께서 그런 예배를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예배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예배는 집으로 돌아온 자녀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그 아버지 앞에 다시 서고 싶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를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끝내 회복하시는 참된 예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