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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을 다시 만난 사람 / 무너진 예배는 어떻게 다시 시작되는가 ②

by Church, The Bridge 2026. 7. 7.

예배는 무엇으로 시작될까요?
찬양일까요.
기도일까요.
말씀일까요.
성경은 조금 다른 대답을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이사야는 이미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사야를 다시 성전으로 부르셨습니다.
왜였을까요?
사역자는 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예배자로 다시 세우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나라를 붙들어 주던 왕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세상의 빈 왕좌를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늘의 보좌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이사야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커질수록 하나님은 작아 보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면,
문제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게 보입니다.
예배는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 이사야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나님을 가까이 볼수록
다른 사람의 죄보다 자신의 죄가 먼저 보입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시간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죄책감 속에 머물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단의 숯불을 그의 입술에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참된 예배는 여기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을 보고,
자신을 보고,
은혜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십자가를 떠올립니다.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하게 한 것은 성전의 숯불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정죄하는 자리가 아니라,
죄인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여신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제야 이사야는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저는 이 순서가 참 좋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일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먼저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순서를 자주 바꾸려고 합니다.
먼저 봉사하려 합니다.
먼저 교회를 세우려 합니다.
먼저 사역을 시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먼저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배하지 않는 사역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예배하는 사람의 삶은 결국 하나님께 쓰임받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브릿지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이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사역자를 많이 보내 주십시오."
보다 먼저,
"주님, 하나님을 다시 만난 예배자들을 세워 주십시오."
하나님을 크게 보는 사람,
자신을 정직하게 보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
그런 예배자들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도 함께 세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렇게 믿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설교도 아닙니다.
사람의 열심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것.
바로 그곳에서 예배는 다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하나님은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저는 그 찾으시는 한 사람이
먼저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