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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은 왜 작은 문 하나만 남겨 두실까

by Church, The Bridge 2026. 7. 7.

문이 많다는 것은 안심이 됩니다.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으로 가면 되고, 그 길도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문을 늘리며 살아갑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더 많은 가능성을 준비합니다.
혹시 모를 실패를 대비해 언제나 다른 문 하나쯤은 남겨 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문을 자꾸 줄이십니다.
노아에게는 방주 하나만 남겨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홍해를 두셨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를 두셨습니다.
기드온에게서는 군사를 줄이셨고, 여호사밧에게는 군대보다 찬양대를 앞세우게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분주함을 선택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단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속 하나님은 이상할 만큼 사람들의 선택지를 줄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문이 많을 때 사람은 문을 계산합니다.
그러나 문이 하나만 남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또 다른 안전장치를 만들고 살아갑니다.
실력이 있으면 실력을 의지하고, 돈이 있으면 돈을 의지하며,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의지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한 일조차 하나님보다 방법을 더 신뢰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도 다른 길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주 그 다른 문을 닫으십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더 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문이 하나뿐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주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질문은 절망의 질문이 아니라, 믿음이 시작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능성을 모두 없애신 후에야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가능성을 붙드는 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드는 손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의 계산이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저도 최근 한 가지를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문을 만드는 것이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문 앞에 오래 서 있는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통로를 찾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저를 넓은 길로 부르신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한 걸음씩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많은 문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문이 하나뿐이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문을 믿지 않습니다.
문을 여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몇 개의 문을 닫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것은 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전에, 더 깊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는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닫힌 문 앞에서 너무 오래 절망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한 가지를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문을 닫으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문을 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문은 대부분,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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