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의 외도는 2017년쯤 시작되었습니다. 아내의 외도의 시작은 저의 권면으로 새롭게 시작한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스물다섯에 만났고 스물여덟에 결혼하여 결혼 33년째입니다. 제 아내는 군 전역 후 목회자의 꿈을 안고 상경하여 출석하기 시작한 교회의 수석장로님의 딸이었고 그 교회의 메인 피아노 반주자였습니다. 제 아내는 아주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저를 만나 연예를 시작한 시점부터 신학을 공부하는 내내 제가 외국을 드나들며 박사학위를 받고 목회를 시작한 후에도 그 헌신은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지금도 그 헌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북한에 고향(실향민)을 둔 장인 장모님의 딸답게 생활력도 강하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아내는 책 읽기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사면 아내가 먼저 읽고 나중에 제가 읽어야 할 만큼 책 읽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랬던 아내가 어느 날부터 책 읽기도 멈추고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어느 해는 영어 성경 쓰기를 하고 왜 책 안 읽어하면 그냥 필요 없어서라고 아주 간단히 대답합니다. 제 아내는 중앙대 피아노과를 졸업했고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아내의 피아노를 조율해 주셨던 분들이 저의 아내는 피아노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아내의 연주엔 뭔가 다른 사람과 다른 은혜가 있다고 평가해 주곤 했습니다. 참고로 아내의 피아노를 조율해 주시던 두 분은 서울대와 예술의 전당의 피아노를 조율하시던 실력 있는 분들이었고 저희 교회에 출석했던 교인이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디딤교회를 나와 새롭게 더 브릿지 교회를 개척할 때까지 아내의 피아노를 잘 관리해 주셨던 분들입니다.
아내의 외도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가 원인이었습니다. 저의 권유로 시작한 피아노 유투버 생활이 아내를 서서히 바꾸어 놓아던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내는 저의 사역 도우미로서의 생활을 마감할 새로운 사역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만난 후 아내는 처음으로 저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sister라고 부르며 아내에게 메일을 보내오고 아내의 영상에 댓글을 달고 후원금을 보내는 미국 펜(성도)이 생기고 전세계가 고립되었던 코로나 시절 어느 날은 고립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기게 되었다며 스위스에서 후원금을 보내고 어떤 때는 아내의 연주곡을 사용하겠다 연락이 오고, 하루 종일 아내의 음악을 틀어 놓는 개인, 카페, 교회들이 늘고 댓글을 통한 서로 간의 소통이 늘어가며 아내는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위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아내의 연주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연주를 교회 기도회 음악으로 사용하는 교회가 은헤로움을 고백하면 할 수록 아내는 저에게 더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역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새롭게 교회 사역을 준비하는 내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를 제 사역의 붙박이 사역 도우미로 당연시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헌신으로 저는 개척 후 단 한번도 반주자 없는 예배를 드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개척교회가 사용하는 반주기는 구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반주로 개척교회의 기도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있었고 교회 부흥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인간 반주기처럼 저의 모든 순간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목회자로 음악적 약점을 가지고 있던 저를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커버해 주었습니다. 그랬던 아내가 저의 새로운 교회 개척에도 헌신하며 함께 해 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알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내가 저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보여지는 미래의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내를 떠나보낼 그때를 위해 아내에게 유투버 활동을 권유했는지도 모릅니다. 막연함이 현실이 될 때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침착함보다는 당황의 결과인 준비되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들이박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왜 그러세요 아내 없이 제가 어떻게 사역을 하죠 아내의 반주가 없는 예배, 기도회, 아내가 없는 주일학교 아내 없는 식사 봉사 어떻게 하죠..., 이런 현실이 인식될 때마다 믿음없는 행동과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공갈협박하며 저 목회 안 합니다. 억지 부리고, 투쟁하고, 욕하고, 짜증 부리고 저의 하나님 아버지께 안 해본 짓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아내는 저에게 더 멀어져 갔고 멀어져 있었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과는 달리 아내는 평온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이 더욱더 깊어진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연예편지인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며 그 묵상을 피아노 연주에 담아내고 그것을 업로드하는데 푹 빠져 있습니다. 노안이 온 아내는 눈의 피로가 심하다며 읽기를 줄이겠다고 했고 줄여야 한다면 성경 읽기외에는 다른 것을 전부 줄이겠다는 결정을 하고 8년 정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10녀 전쯤인가요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지역교회 조찬기도회가 있었고 제가 간증자로 간증을 했습니다 그 간증을 듣고 목회 은퇴가 3년 남은 목사님이 교회에 돌아가 자기 오늘 은혜 받았다. 나도 장목사처럼 이 교회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개척하겠다고 사모님을 설득하셨다고 합니다 결과는 이혼이었습니다. 사모님 왈 새롭게 개척하시려거든 나와 이혼하고 당신 혼자하시라고..., 훗날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사적인 만남에서 저에게 들려 주신 이야기 였습니다 그 때 목사님 심각하셨다고..., 우리 부부의 위기였다고...,
제 아내는 저보다 나이가 4살 많은 연상녀입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64세입니다. 만나이로 해도 62세입니다. 저는 입버릇처럼 제 나이가 아닌 아내의 나이에 맞춰 교회 사역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제 나이는 한국나이로 60입니다. 만나이로는 아직 58세입니다. 사역에서 은퇴하기엔 이른 나이입니다. 이런 제가 잃어 버렸던 건강을 다시 회복하고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꿈과 열정을 다시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파 병치레를 하는 동안 제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안 제 아내는 저와 더 멀어져 자신의 사역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이 그 사역으로 부르셨다는 부르심의 확신이 더욱 강해져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런 아내를 보며 저의 사역 방향에 대해 고민했고 직접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뛰어 들어 2년 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들 열심히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방향을 놓친 사람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늙어짐에 대한 분노..., 이런류의 사람들 속에서 저는 인생 후반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가게 되었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브릿지 더 브릿지 교회..., 제가 지금것 해왔고 꿈꿔 왔던 지역교회의 모습이 아닌 다른 교회의 사역 모델이 하나님께로부터 제시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외도의 결과인 아내의 사역 전환은 저 또한 다른 사역으로의 부르심이 있다는 메시지로 연결되었습니다. 저를 아버지라고 부르던 태국 청년 친정 아버지같은 사랑을 느꼈다며 베트남에 오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남겨 준 베트남의 부부 노동자..., 형님 내년 부터는 부장님하셔야죠라고 부탁하던 300억 매출의 사장님..., 형님 이제 형님의 자리로 돌아가셔야죠 길을 제시해 주던 5성급 호텔의 관리소장..., 동탄의 학원 원장님께서 기다리고 있다고 돌아오길 설득하던 대치동 아줌마..., 늘 밝게 인사하며 맛나게 식사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는 현장의 청년 직원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이실직고 하라고 협박하는 탈북민 노동자..., 제가 당뇨 후유증으로 겁나게 아플 때 양파즙이 좋다며 1년 넘께 무안양파즙을 보내주신 대전의 목사님 어느 날부터는 양파즙을 끊으시고 20kg 쌀을 매달 보내시기 시작하신 목사님..., 데시타의 파양 땐 어떻게 아셨는지(영빨이 쌘분같음ㅋㅋ) 저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하신 바로 그 대전의 목사님...,
8년의 병치레와 방황..., 많이 아팠던 육체와 마음, 이런 저를 이끌어 하나님은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끌어 주셨고 저에겐 낮은 그곳이 너의 자리라고 하시며 그곳이 원래 너의 자리였다며 그곳에서 시작하라고 말씀하신다. 보내 주신 쌀로 밥해 먹고 그냥 함께 기대고 사는 곳 그러나 분명한 꿈이 있고 실천과 열정이 있는 곳..., 두달전 병점역 앞에 있는 지하교회를 보며 지하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게 하신 하나님...,
이제 전 저의 사역에 묶어 놓았던 아내를 아내의 사역으로 보내 주려고 합니다. 아내없이는 많은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아내의 사역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기에 그리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과한 사랑(?)과 아내의 사역에 대한 집착을 알았기에 아내를 떠나 보내는 것이 제가 해야할 순종의 반응이며 아내을 사랑하는 제가 해야할 결정이라 믿기에...,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아내를 아내가 있어야할자리로..., 해야할 사역으로 떠나보내려 합니다.
3일전 저는 아내에게 20만원을 통장에 넣어 줄테니 옷 한벌 구입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 했습니다. 10년이 훨씬 넘은 옷들과 신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한다는 고백으로 아내의 사역을 응원한다는 응원가로 저 또한 새로운 사역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기에 그 증표로 아내에게 옷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사역할 그 곳에서 제가 선물해 준 옷이 새로운 길의 열림을 알리는 옷이며 순종의 옷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고 있는 아내를 사랑으로 응원합니다.
아내의 외도는 저와 아내에게 새로운 사역의 길을 열어 주는 것으로 가고 있습니다.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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