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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론 내리지 않는 공동체

by Church, The Bridge 2026. 7. 3.

평가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목회의 자리를 내려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역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생활의 변화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 내려왔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고민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씨름을 하고 있었는지 듣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미 결론은 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겠지."
"문제가 있었겠지."
"끝난 사람이지."
"왜 그 좋은 자리를 내려왔을까."
생각보다 말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이었습니다.
격려는 없었고, 기다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밟는 것이 더 익숙해 보였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목회자들이 모인다고 모두 목회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교회가 있다고 모두 공동체는 아니라는 것을.
저는 스스로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더 큰 교회도 가능했고, 더 편한 자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은 목사는 결국 삯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설교는 하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사역은 하지만 영혼은 메말라 가고.
교회는 성장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목사가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유보다 결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과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형의 목사라는 사실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끝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저를 알던 한 지인에게 긴 카톡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장목사,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 만나면 망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그런 글을 올립니까."
"그런 글을 올리면 정말 망한 사람이라고 더 말을 만들 겁니다."
"그냥 내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분은 저를 염려했을 것입니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읽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구나.
목사는 망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를 내려놓으면 실패.
사역을 멈추면 끝.
강단에서 내려오면 낙오.
하지만 정작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 내려왔는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고 있는지.
왜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는지.
저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관계를 끊었습니다.
단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 질문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바울의 고백 앞에서 멈추게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린도전서 4:3-4)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 앞에 서 있었습니다.
비난도 받았고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지 않겠다."
"심지어 나 자신도 판단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판단과 평가는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너무 쉽게 평가의 자리에 앉습니다.
성공하면 축복이라고 말하고.
실패하면 징계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인정하고.
내려오면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평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마태복음 7:1)
우리는 사람의 현재를 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끝을 보십니다.
우리는 결과를 봅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보십니다.
우리는 실패를 봅니다.
하나님은 여정을 보십니다.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 사람들은 실패한 왕자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사람들은 끝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했을 때 제자들은 그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도 결론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40년을 기다리셨고.
13년을 기다리셨고.
부활의 아침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평가자이기 전에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교회 홈페이지에도.
다시 시작할 유튜브에도.
브런치에도.
계속 제 삶을 공개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고백은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목회의 자리에서 내려와 방황하는 사람.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
성공이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 사람.
하나님 때문에 멈추어 선 사람.
참된 것을 찾기 위해 돌아선 사람.
그들의 방황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읽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나님이 아직 나를 끝내지 않으셨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셨던 제 삶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실패처럼 보였고.
때로는 이해받지 못했고.
때로는 사람들의 평가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하게 공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행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이야기할 곳이 없습니다.
직장에서는 경쟁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버텨야 하고.
교회에서는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 무너집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성공을 가르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실패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 주는 공동체입니다.
사업을 접은 사람이 와도 괜찮은 곳.
교회를 떠난 사람이 와도 괜찮은 곳.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와도 괜찮은 곳.
사역을 내려놓은 사람이 와도 괜찮은 곳.
그리고 아무도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는 곳.
"왜 실패했습니까?"
보다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를 묻는 곳.
사람들은 이유를 만들지만 공동체는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평가하지만 공동체는 듣습니다.
사람들은 낙인찍지만 공동체는 함께 울어 줍니다.
세상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스스로 내려온 사람들.
참된 것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는 실패자라고 말하고.
교회에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그런 사람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광야의 모세.
감옥의 요셉.
도망친 엘리야.
실패한 베드로.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들이 결론 내린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결론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교회를 꿈꿉니다.
그곳은 평가가 멈추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시간이 존중받는 곳입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서로를 심판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아직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끝내지 않으신 사람을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란 실패를 허용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쓰고 계시는 이야기를 함께 기다려 주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평가는 인간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런 공동체를 찾고 계시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