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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자녀답게 결정하기 2

by Church, The Bridge 2026. 7. 8.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움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손해를 보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두려움은 미래를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오늘로 끌어옵니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믿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실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보고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앞에 섰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약속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사십 일이 지난 뒤, 그들은 모두 같은 땅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포도송이도 보았습니다.
비옥한 땅도 보았습니다.
거대한 성읍도 보았습니다.
장대한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본 것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달랐습니다.
열 명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왜 같은 땅을 보고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을까요?
차이는 현실을 보는 눈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눈에 있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나가 내리는 것을 먹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의 순간에는 하나님보다 거인들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거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같은 거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려움을 피할 방법을 찾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안전한 길,
실패하지 않을 길,
손해 보지 않을 길을 원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안전한 길보다 믿음의 길로 부르셨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미래를 다 알아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책임져야 한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두려움은 계산하게 만들고,
믿음은 순종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문이 닫힐 것을 먼저 생각하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여실 문을 먼저 기대합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큰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갈렙도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움이 사라진 후에 순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크고 작은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세상은 현실을 먼저 계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현실의 크기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로 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현실을 기준으로 결정하게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준으로 결정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