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사람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빨리 길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순종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뜻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문제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기다림이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약속은 여전히 약속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사라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하갈을 통해 아이를 얻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제안은 당시 문화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믿음의 실패라고 말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것은 기다림의 실패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믿으면서도,
시간이 길어지면 스스로 길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조급해지고,
기다리면서도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말합니다.
"이 정도는 내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앞질러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살이 되었을 때 태어났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때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보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조급함은 결과를 믿지만,
기다림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조급함은 내 손으로 이루려 하지만,
기다림은 하나님의 손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을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빠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하루 만에 배송을 받으며,
몇 초 만에 답을 찾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기다림은 무능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기다림으로 자랍니다.
씨앗은 하루 만에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아이는 하루 만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도 하루 만에 성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통해 사람을 빚으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도 기다리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조급하게 문을 열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문을 여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가장 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내 약속은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를 준비시키며 이루어지고 있다."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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