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는 용서를 선택합니다
인생에는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있는 말이 있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서
용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용서는 약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잊을 수 없으니 용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시기와 미움을 받았고,
노예로 팔렸으며,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이제는 요셉이 결정할 차례였습니다.
형들을 심판할 수도 있었고,
복수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요셉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정의라고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요셉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형들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형들의 죄를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악이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악보다 더 크게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용서는 상처가 작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 크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용서를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풀리면 용서하고,
분노가 사라지면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용서는 먼저 결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아직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용서는 상대방이 변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할 때 시작됩니다.
생각해 보면 용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 때문이 아닙니다.
상처를 붙들고 있는 것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를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과거에 묶어 둡니다.
용서는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의를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심판의 자리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복수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생 씨름해야 할 결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완전하지는 못해도,
용서를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아직도 상처를 붙들고 있느냐, 아니면 나의 은혜를 붙들고 있느냐?"
하나님의 자녀는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처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선택합니다.
그것이 약함이 아니라,
십자가를 닮아 가는 가장 강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상처를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용서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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