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손목에 있는 스마트워치가 자주 같은 알림을 보냅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라는 조언도 함께 전해 줍니다.
가끔은 웃음이 납니다.
차 안에서는 대부분 찬양을 듣거나 설교를 듣는데,
왜 스트레스 지수는 계속 높게 나오는 걸까.
생각해 보니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평온한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말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평안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억눌러 놓은 감정일 때가 많습니다.
화가 나도 괜찮은 척합니다.
상처를 받아도 괜찮은 척합니다.
두려워도 담대한 척합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 앞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엄하게 책망하신 사람들은 세리나 창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룩해 보이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회칠한 무덤.
겉은 깨끗하지만 안은 썩어 있는 모습입니다.
생각해 보면 가면은 오래 쓸 수는 있어도 실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벗겨집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기에 벗기십니다.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밧세바의 사건 이후에도 한동안 그는 왕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날 다윗은 왕의 가면을 벗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완벽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정직한 예배자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신 이유도 우리의 가면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면을 벗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강한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믿음 좋은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쩌면 진짜 치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가면을 벗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벗어야 합니다.
그분은 이미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도,
숨겨 둔 눈물도,
말하지 못한 두려움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 기도는 이것입니다.
주님, 더 이상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지 마십시오.
평안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지 마십시오.
성숙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설 수 있는 사람 되게 하소서.
가면을 벗을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감추어진 제 마음까지도 치유받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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