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답을 찾기 시작합니다.
조급한 사람은 더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고,
분노한 사람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을 찾습니다.
가면을 쓴 사람은 더 완벽한 모습을 만들려고 애쓰고,
공허한 사람은 또 다른 목표를 세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해도 마음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성경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망했습니다.
희망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오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이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길을 걸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예수님은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을 먼저 회복시키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조급함을 없애려고 합니다.
분노를 없애려고 합니다.
불안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감정 하나하나를 붙잡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다시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조급함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분노가 마음을 채웁니다.
예수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가면을 쓰게 됩니다.
예수님보다 응답을 더 사랑하면 예배도 목적을 잃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발걸음은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아본 순간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로마는 그대로였고,
대제사장도 그대로였으며,
십자가의 흔적도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조급함의 답은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분노의 답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면의 답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시는 예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예배의 답은 더 좋은 예배 형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장 온전히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질문에 하나의 답을 주셨습니다.
그 답은 방법이 아닙니다.
원리도 아닙니다.
한 분의 인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복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답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제 마음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보다 먼저 예수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답은 결국
예수님 안에서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내 마음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모든 질문에 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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