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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억울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요?

by Church, The Bridge 2026. 7. 6.

억울한 일을 당하면 기도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상대를 바꿔 달라고 기도합니다.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진실을 밝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깊은 기도를 보여 줍니다.
한나를 생각해 봅니다.
그녀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질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매년 그 상처를 들추었습니다.
말로 찌르고,
비웃고,
한나가 울 때까지 괴롭혔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한나가 브닌나와 싸웠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복수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한나는 성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한나의 기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입술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상대를 무너뜨려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참 이상합니다.
억울한 상황인데,
기도의 중심에는 브닌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억울함은 사람에게 시선이 머물 때 더 커집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할까.'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까.'
그런데 한나는 시선을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브닌나를 먼저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한나를 먼저 붙드셨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얻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 앞에서 평안을 얻고 성막을 나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여자가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브닌나도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한나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억울함을 당하셨습니다.
거짓 증언을 들으셨고,
죄가 없으셨지만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을 변호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신뢰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억울함 속에서 가장 먼저 드려야 할 기도는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를 이해해 주십시오."
가 아니라,
"주님,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사람이 내 명예를 빼앗을 수는 있습니다.
내 것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까지는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억울함 속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오늘도 저는 기도하려 합니다.
"주님, 제 억울함을 당장 해결해 주십시오."
이 기도보다 먼저,
"주님, 억울함 속에서도 주님을 잃지 않게 하소서."
"사람 때문에 제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분노보다 믿음을 선택하게 하소서."
"억울함보다 주님의 뜻을 더 크게 보게 하소서."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지키고 싶으신 것은
내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끝까지 지켜 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억울함을 겪으셨지만,
그 억울함보다 아버지의 뜻을 더 크게 붙드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억울함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된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한 날에는 상황만 바꿔 달라고 기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제게 주시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그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때에 진실도 드러내시고,
억울함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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