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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말조심

by 더브릿지교회

일상 가운데 말조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요즘은 제가 던진 말이 씨가 된 것처럼 말과 일치되는 불상사들이 많이 나타나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사도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목사이기에 그쪽에서 말하는 그런 것은 아님을 확실히 해둡니다. 한 명은 자진퇴사 한 명은 강제퇴사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지속되어 저 둘만 없으면 잘 될 것 같은데 그리고 한 달..., 이 것 외에도 마음속 생각들이 말들이 거침없이 되는 것을 보며 제가 하는 생각과 말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게 되는 날입니다. 저를 향해 던진 말, 다른 사람들을 향해 던진 말들이 그대로 되는 것을 보며 제 말속에 무엇을 담았는지 그 속 뜻도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말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사람의 영적 실재를 담아내는 그릇과 같습니다. 성경은 혀를 작은 지체이지만 온몸을 굴레 씌우는 배의 키나 온 산을 태우는 불씨에 비유하며, 말의 힘이 한 사람의 인생과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강력하다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내뱉는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해 심판 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말조심이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의 수양을 넘어 하나님 앞에 서는 단독자로서의 엄중한 책임임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입술을 다스리는 일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직결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내면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말을 아끼려 해도 결국 날 선 비난이나 불평이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말조심은 침묵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 이전에, 내 마음의 중심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우는 영적인 훈련에서 시작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권면은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겸손을 요구하며, 인간의 성급함이 가져오는 수많은 실수를 방지하는 지혜로운 방패가 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소극적인 절제를 넘어 적극적인 '세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단순히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이 듣는 이에게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때에 맞는 선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와 같아서 낙심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비방과 희롱 대신 감사의 언어를 선택하고, 비판의 자리에서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은 우리 삶을 일상의 예배로 드리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는 이 거친 혀를 길들일 능력이 없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내 입술의 문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간구했듯이,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우리의 언어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흉기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사람을 살리고 소망을 전하는 복음의 도구로 쓰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전히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전수하는 전략은, 그리스도인의 '말'이 어떻게 '깨어진 틈'이 아닌 '파멸의 구멍'이 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탄은 결코 우리가 대놓고 악한 말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언어 속에 아주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하나님의 빛을 차단하고, 그 틈을 자기들의 독소로 채우려 합니다.

​스크루테이프가 제안하는 말의 공격 방식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말투'의 왜곡입니다. 그는 환자가 어머니와 대화할 때, 말의 내용 자체는 문제가 없더라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톤'과 '표정'을 섞으라고 조언합니다. 이는 우리가 "나는 틀린 말 한 적 없다"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순간, 정작 그 마음의 깨어진 틈 사이로는 하나님의 빛이 아닌 사탄의 냉소가 흘러나오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내 의로움이 강조될수록, 타인을 향한 언어는 생명을 살리는 다리가 아니라 상대를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또한, 사탄은 우리의 언어를 **'모호함'과 '지적 허영'**으로 오염시킵니다. 스크루테이프는 환자가 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의미를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단어들을 내뱉으면서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때 언어는 내면의 깨어짐을 치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부패함을 가리는 화려한 덧칠이 됩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종교적 언어가 사실은 하나님의 빛이 들어올 틈을 꽉 막아버리는 견고한 벽이 되는 셈입니다.

​결국 스크루테이프의 공격을 이겨내는 길은, 우리의 말이 '나의 강함'이나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데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자신의 완벽함을 주장할 때 그 교만을 타고 들어오지만, 우리가 자신의 말이 얼마나 오염되기 쉬운지 인정하며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낮아질 때 당황합니다. 우리의 상처와 실수를 정직하게 대면하며 생기는 그 '깨어진 틈'은 사탄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될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 가장 선명하게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적 승리는 사탄처럼 교묘한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크루테이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적 한계를 깨닫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기다리는 겸손한 영혼입니다. 우리가 '깨어진 자'로서 건네는 담백하고 진실한 한마디는, 사탄이 구축한 화려한 거짓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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