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미국에서 여든이 넘으신 한 권사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한 마지막 한국 방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먼 길을 오셨고, 한국에 계시는 동안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권사님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시고 교사로 일하시다가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이민 1세대가 대부분 그러했듯 자신의 꿈보다 자녀들의 미래를 먼저 선택하셨고, 오랜 세월 헌신과 수고로 가정을 세우신 분이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으로서 평생 신앙을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고 살아오셨고, 기도를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당시의 저는 특별한 존재감도, 눈에 보이는 열매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설명할 만한 사역도, 자랑할 만한 결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계신 한 노권사님이 저와 더브릿지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권사님은 미국에 중보기도 모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기도 모임의 한 분이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권사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권사님이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실 것입니다."
권사님은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와 대화를 나눈 후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날 이후 권사님은 제게 기도 제목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미국에 돌아가서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기도해야 할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았습니다.
저는 종종 인생의 가장 밑바닥은 기도 제목조차 나눌 사람이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면 부담이 되고, 도움을 요청하면 미안해지고, 결국 혼자 견디는 것이 익숙해지는 상태.
누군가 기도하겠다고 말해도 믿어지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상태.
어쩌면 그것이 제가 지나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 기도의 사람을 세워 두셨습니다.
한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공동체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제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누군가의 무릎 위에 제 이름을 올려놓고 계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문이 열리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현실이 바뀌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저를 현실 밖으로 옮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현실 한가운데서 다시 믿게 하셨습니다.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주님은 지금도 친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멈춘 것 같은 시간 속에서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저는 특별한 변화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여전히 폼나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폼나는 현실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가슴으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눈으로 노래합니다.
눈물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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