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리 교회의 부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새벽기도였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교회의 불이 먼저 켜졌고,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예배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사업 때문에, 누군가는 자녀 때문에, 또 누군가는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새벽기도를 부흥의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뜨거움은 교회를 살렸고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눈물과 기도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는 새벽기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드렸지만, 어쩌면 새벽기도를 가장 멀리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기도는 예배당에 오는 것이고, 설교자가 강단에 서는 것이고,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새벽은 조금 다릅니다.
새벽 세 시가 넘으면 하루가 시작됩니다.
학교 급식을 배달하기 위해 차에 오르고, 아직 잠들어 있는 도시를 지나 학교로 향합니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고, 무거운 짐을 옮기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다음 장소로 향합니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낯설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던 사람이 새벽 배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새벽기도를 인도하던 사람이 학교 급식을 나르고 있다는 현실이 때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경열아, 이제 네가 새벽기도를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구나."
그 음성은 책에서 들려온 것도 아니었고, 설교 가운데 들려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새벽기도란 결국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잠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이고, 편안함보다 하나님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하나님께 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제 새벽도 그렇습니다.
비록 예배당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기도원에 올라가 있지는 않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길에서 작은 은혜들을 만나게 됩니다.
현장의 급식 선생님이 건네주는 사과 한 조각.
"목사님, 이거 드세요."
차갑게 꺼낸 우유 한 팩.
"아침도 못 드셨죠?"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친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 사과 한 조각이 마치 새벽에 주님께서 건네시는 사랑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유 한 팩이 마치 "오늘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쓰러졌을 때 하나님은 먼저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때로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지만, 때로는 사람을 통해, 작은 친절을 통해, 사과 한 조각과 우유 한 팩을 통해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예전에는 제가 새벽기도를 인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제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예전에는 제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새벽길에서 제게 자신을 다시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제게서 새벽기도를 빼앗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장소를 바꾸셨을 뿐입니다.
예배당에서 도로로, 강단에서 트럭으로, 설교 준비실에서 학교 급식 현장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제게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경열아, 이제 네가 새벽기도를 하고 있구나."
오늘도 새벽은 피곤합니다.
몸은 무겁고 현실은 여전히 버겁습니다.
그러나 그 새벽은 더 이상 단순한 노동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다시 기도를 가르치시는 시간이며, 하나님께서 제게 사랑을 건네시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새벽 예배당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새벽 도로 위에서 동일하게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어쩌면 지금 제 인생의 새벽기도는 무릎으로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피곤한 몸과 걸음으로 드려지는 삶의 예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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