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좋아져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글이었습니다.
어떤 글은 기도 같았고,
어떤 글은 묵상이었으며,
어떤 글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 같았습니다.
며칠 사이에 여러 편의 글을 연달아 올렸습니다.
누군가는 왜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졌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하나님보다 사역을 더 크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보다 결과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열매를 바라보았습니다.
잘해야 했고,
증명해야 했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하나님보다 사역이 더 중요해졌고,
은혜보다 결과가 더 중요해졌으며,
하나님을 전하는 일보다 잘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교회도 멈추었고,
사역도 멈추었고,
설교도 멈추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사역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침표를 찍은 자리에 하나님께서 쉼표를 찍고 계셨다는 것을.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은 저를 다시 설교하게 하시기보다 먼저 하나님 자신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사역보다 하나님을 먼저 좋아하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좋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쓴 여러 편의 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쉼표에 대한 이야기.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이야기.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만 남는다는 이야기.
사실 이 글들은 독자들을 향해 쓰기 전에 먼저 저 자신을 향해 쓰인 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끝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만 남아도 충분하다."
그 말씀들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은 저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교보다 증언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방법보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잘해서가 아닙니다.
준비가 다 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붙잡는 것 외에는 제게 남은 것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남은 사람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가장 만나고 싶어 하시는 사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다시 하나님을 편드는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잘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하는 사람.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 주는 사람.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
그래서 다시 글을 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쓰려고 합니다.
교회를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사역을 이야기하기 전에 은혜를 이야기하고,
열매를 이야기하기 전에 포도나무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번에 쓴 여덟 편의 글은 새로운 시작의 글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 자신을 좋아하게 하신 한 설교자의 고백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의 끝에는 여전히 같은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져서 다시 하나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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