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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영혼에 집중하기 위해

by Church, The Bridge 2026. 6. 28.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도, 예루살렘 성전에도, 산 위에도, 길가에도 언제나 군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 계셨지만 언제나 한 사람을 만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한 영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더 큰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열매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리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한 사람에게 머물렀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사람들은 그를 세리장이라고 불렀고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한 영혼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는 일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에게 둘러싸여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은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행하신 후 곧바로 다음 장소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너무 빠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깊이 만나지 못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정작 한 사람의 마음에는 머물지 못합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의 수를 세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영혼은 숫자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늘 멈추셨습니다.
맹인 바디매오 앞에서 예수님은 이미 그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답을 주기 전에 질문하셨습니다. 한 영혼에 집중한다는 것은 가르치기 전에 듣는 것입니다. 해결하기 전에 묻는 것입니다. 조언하기 전에 함께 앉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장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물가에 앉아 한 사람과 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 여인의 상처를 들으셨고, 갈증을 말씀하셨고, 예배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것은 전도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관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그 사람 곁에 머무르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모든 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답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절망을 듣게 하셨고, 상실을 말하게 하셨으며, 마음을 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경을 풀어 그들의 인생을 다시 해석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목회의 가장 중요한 일도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다시 읽도록 돕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실패했느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그의 정체성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주셨습니다.
한 영혼에 집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복음 안에서 다시 읽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능력이 아닙니다. 더 많은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먼저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질문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입니다.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해석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군중 가운데 계셨지만 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변화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 사람의 가정으로, 마을로, 도시로 흘러갔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많은 사람을 보게 하소서가 아니라, 주님이 보고 계시는 그 한 사람을 보게 하소서.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기보다 주님께 데려가게 하시고, 그 영혼의 구원자가 아니라 곁에서 함께 걷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한 영혼을 먼저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배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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