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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늙어 간다는 것

by Church, The Bridge 2026. 6. 30.

새벽에 함께 일하는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예순일곱입니다.
처음 그 형님을 보며 제 마음에 떠올랐던 단어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만큼 약았고, 자기중심적이었고, 자신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일하다 보면 늘 손해 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누군가는 더 힘든 일을 하고 누군가는 조금 더 편한 자리를 찾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해가 시작되며 형님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년하고 올해가 달라. 늙는다는 게 해마다 달라."
처음에는 그 말조차 핑계처럼 들렸습니다.
또 늙음을 무기로 도움을 요청하는구나.
조금 더 편하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형님의 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년보다 느려진 손.
예전보다 더딘 걸음.
무거운 것을 들 때 잠시 멈추는 모습.
예전 같으면 한 번에 끝냈을 일을 두 번, 세 번 나누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형님이 늙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늙음이 형님을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늙음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감출 수 있고, 약함을 숨길 수 있고, 속마음을 감출 수 있지만 늙음만큼은 숨길 수 없습니다.
손이 말해 주고, 걸음이 말해 주고, 몸이 말해 줍니다.
그러면서 문득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나는 이 형님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목회자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
직장 동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가.
손해 보게 만드는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한 영혼으로 보아야 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도 그 답을 배우고 있습니다.
때로는 잔소리 많은 늙은 꼰대로 보이고, 때로는 너무 세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며, 때로는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약은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다른 질문을 던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경열아, 너는 어떻게 늙고 싶으냐?"
사실 그 형님의 늙음을 바라보다가 결국 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늙어가고 있습니다.
손이 느려질 것이고, 몸이 약해질 것이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 든다는 것과 성숙해진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
성경은 우리의 겉사람이 후패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늙는다는 것은 몸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늙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몸은 느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깊어질 수 있습니다.
기억력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힘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약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조금씩 배워 가는 사람입니다.
시편 71편의 노인은 자신의 늙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그는 늙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형님을 바라볼 때마다 조금 다른 마음이 듭니다.
저 사람은 늙어가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 역시 늙어가고 있구나.
우리 모두는 결국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 사람으로 남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의지하며 늙어 가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늙는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일지 모릅니다.
점점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지만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사람.
점점 약해지지만 은혜에는 더 민감한 사람.
점점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만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더욱 깊이 아는 사람.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계절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늙어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아버지이시다."
어쩌면 늙음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자녀인지를 마지막으로 배우게 하기 위해 오는 하나님의 학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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