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6. 13:23ㆍ칼럼
삶의 현장은 때로 은혜의 강가가 아니라 인내의 광야가 됩니다. 저에게는 그 직원이 그랬습니다. 모두가 땀 흘려 수고할 때 슬쩍 뒤로 물러나 요령을 피우고, 본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제 어깨 위로 떠넘기던 사람.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수없이 많은 울분을 삼켰습니다. "주님, 제 인내의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 평소 그를 대할 때면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라, 차마 목회자(그는 제가 목회자라는 사실을 모릅니다.)라는 직업 때문에 겉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흉터처럼 남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마음속에서 그는 동료가 아니라 저의 평안을 갉아먹는 '악마'와도 같았습니다.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 저는 그저 형식적인 축복과 의례적인 악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그래서 제 어깨의 짐이 가벼워지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제 손을 맞잡은 그의 눈에 갑자기 물기가 서렸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저의 모든 방어기제를 무너뜨렸습니다.
"형님... 그동안 정말 죄송하고, 또 고마웠습니다. 부족한 저를 끝까지 견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방울을 보며 저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제가 '악마'라고 규정짓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던 그 사람 안에, 사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괴로워하던 한 가냘픈 영혼이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은 제가 생각했던 사악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버텨준 이에 대한 뒤늦은 참회'였고, '사랑받을 자격 없는 자가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떠넘긴 짐'이라며 진저리 칠 때, 그는 사실 스스로 짐을 질 줄 모르는 연약함에 허덕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삔질거림'이라며 비난할 때, 그는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소외감 속에 떨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눈물을 보는 순간, 제 마음속의 '악마'는 사라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주님의 돌봄이 절실히 필요했던 삶에 지친 한 명의 동료가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악마라고 단정 지으며 정죄했던 제 안의 오만함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잊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역시 얼마나 자주 삔질거리며 그분께 짐을 떠넘기는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의 '악마 같은 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시며 십자가라는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 직원이 흘린 눈물은 저를 향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저를 꾸짖는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했습니다.
"보아라, 네가 악마라고 불렀던 이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자녀다."
사무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먹먹한 가슴 사이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했습니다. 악마의 눈물이 천사의 얼굴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잊지 못할 저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