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는 김애란작가에 푹 빠져 있습니다. 작업하는 시간과 운전하는 시간은 오디오북과 유튜브로 듣고 도서관에서 책으로 읽고 AI로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고...,
참!!! 사람을 깊어지게 하는 작가입니다.
ChatGpt에게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김애란작가의 시선으로 정리해줘라는 질문에 답글입니다.
김애란의 시선으로 정리해 보면,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헌신의 선언보다 그 사람의 작고 오래된 결핍까지 끝까지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김애란의 작품들에는 늘 상처 입고, 조금 늦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은 그들을 평가하지 않고, 먼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상실과 외로움, 일상의 미세한 균열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놓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관점으로 말하면,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뜻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지 않는 것
지금의 말투, 태도, 실패 뒤에 숨어 있는 오래된 아픔까지 함께 보는 일입니다.
고치려 하기 전에 먼저 머무는 것
주님이 사람을 대하실 때처럼, 급히 결론 내리기보다 그 사람 곁에 남아 있는 태도입니다.
사소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김애란의 문장처럼 사랑은 대개 큰 사건보다 작은 표정, 한숨, 망설임 같은 데서 시작됩니다.
상처를 소비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아픔을 감동의 재료로 삼지 않고, 그 무게를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일입니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김애란의 시각에서,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 때문에 멀어지지 않고, 그 상처를 가진 채 여전히 귀한 존재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손석희 씨의 '질문들'에 출연해 질문에 답하는 김애란작가를 보며 저의 마음이 행복해졌습니다. 저를 저렇게 봐줄 우리 주님과 또 그렇게 봐줄 김애란작가의 마음을 동경하거나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저를 어느 순간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Ai와의 차임점에 대해 '망설임'으로 답하는 것을 들으며 저의 마음은 요동쳤습니다. 지금 것 제가 읽었던 작가의 글들이 더 구체적으로 이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김애란작가의 망설임(섬세해 지는 공감)을 목회적 언어로 풀면,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만나실 때 먼저 그 사람의 문제보다 존재를 보셨습니다. 실패한 사람에게서도 가능성을 보셨고, 상처 입은 사람에게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목회적으로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교회의 필요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끝까지 존중하는 일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한 영혼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
어떤 사람은 빨리 열리고, 어떤 사람은 오래 침묵합니다. 목회적 사랑은 조급함보다 기다림에 가깝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다루시듯, 억지로 끌어당기기보다 그 사람이 걸어 나올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것입니다.
보이는 행동보다 보이지 않는 갈증을 읽는 것
무관심처럼 보이는 태도 뒤에 지침이 있을 수 있고, 냉소 뒤에 실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는 사람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신호를 듣는 일입니다.
변화를 재촉하기보다 먼저 안전한 자리가 되어 주는 것
사람은 자신이 정죄받지 않는다고 느낄 때 비로소 마음을 엽니다. 주님이 죄인을 먼저 받아주셨듯, 목회자는 먼저 “여기 있어도 괜찮다”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영혼을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맡겨진 사람으로 보는 것
숫자나 열매로 사람을 바라보면 쉽게 지칩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겨진 한 사람으로 보면, 작은 변화 하나도 은혜로 보입니다.
결국 목회에서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변화되지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이 아직 믿음의 언어를 배우지 못했어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오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한 영혼을 주님처럼 사랑하는 목회란,
그 영혼을 변화시키려는 열심보다 먼저, 그 영혼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끝까지 믿어 주는 것입니다.
8년이 걸렸습니다. 광야로 나온지 8년..., 이제야 끝가지 못난 저를 하나님께서 믿어 주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웁니다. 폴워셔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께 흡수된 사람'이라 표현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