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릿지 교회는 날샘(날마다 솟는 샘물)을 성도들의 묵상을 돕는 Q.T 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번달 날샘 분문은 하박국입니다. 제가 묵상한 하박국 본문을 새벽설교용 원고로 작성했고 그 전문을 업로드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본문 : 하박국 1장 1-5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하박국 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다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다윗도 그랬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시편 13편)
예레미야도 그랬습니다.
욥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박국도 같은 질문을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이 어려움을 견뎌야 합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억울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오해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삶이 힘들 때보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더 힘듭니다.
고난에는 견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하박국은 선지자였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따집니다.
"왜 듣지 않으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왜 악한 사람들이 잘됩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속 질문을 숨깁니다.
교회에서는 괜찮은 척하고,
기도할 때도 괜찮은 척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솔직했습니다.
다윗은 울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불평했습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박국도 묻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의 내용이 아닙니다.
질문의 방향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질문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질문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는 말하면서 하나님께는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이 본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개인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 전체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폭력이 가득합니다.
강포가 있습니다.
변론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정의가 사라졌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묻습니다.
"하나님, 왜 보고만 계십니까?"
오늘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을 보면 정의보다 힘이 앞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짓이 진실보다 더 빨리 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의 문제는 현실을 잘못 본 것이 아닙니다.
현실만 본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문제를 너무 오래 바라보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계속 바라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가려집니다.
사람들의 평가를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문제를 크게 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을 크게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박국서는 단순히 고난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 가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일하고 계십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해결해 주겠다."
"다음 달이면 끝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 것은 내가 너희의 날에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임이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내가'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해결하여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일하고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하박국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얼마나 자주 같은 착각을 합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보다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믿지 아니할 일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박국은 유다를 회복 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갈대아를 일으키고 계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왜 악한 나라를 사용하십니까?
왜 더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까?
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이런 질문을 자주 합니다.
병이 낫기를 기도했는데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도했는데 오히려 더 멀어집니다.
문이 열리기를 기도했는데 더 많은 문이 닫힙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단순히 상황을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하박국은 유다가 바뀌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박국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계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성경은 이 이야기를 계속 들려줍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빨리 나오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옥보다 먼저 요셉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모세는 광야를 끝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보다 먼저 모세를 빚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실패하지 않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 베드로를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환경보다 사람을 먼저 만지십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바뀌어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기도를 바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응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혹시 오늘도
"언제까지입니까?"
라고 묻고 계십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속에 계십니까?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기도의 응답도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먼저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일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비록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오늘도 가장 선한 방법으로,
가장 정확한 때를 향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상황보다 먼저 우리의 눈을 바꾸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은 처음부터 상황이 바뀌기를 원했습니다.
악인이 사라지고,
정의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당장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하신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박국을 바꾸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환경이 변하는 것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병이 낫는 것.
경제가 회복되는 것.
억울함이 풀리는 것.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것.
물론 하나님은 그런 일도 행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상황보다 먼저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상황이 변해도 같은 삶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애굽에서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이 그들의 마음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를 건너자마자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를 지나게 하셨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너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이라."
(신명기 8:2)
광야는 길을 잃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였습니다.
하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질문에 날짜를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답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라는 질문은 결국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날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이십니까?"
"정말 나를 사랑하십니까?"
"정말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까?"
였습니다.
하박국도 처음에는 현실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서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놀라운 것은,
무화과나무가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맺힌 것도 아닙니다.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달라졌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때는 실패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버림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때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박국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셨습니까?"
라는 질문보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까?"
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문제를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눈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도
"언제까지입니까?"
를 묻고 계십니까?
그 질문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그 질문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질문보다 더 큰 선물을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아직 답을 받지 못했어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답보다 하나님이 더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그러나 성경을 끝까지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질문에 단순히 날짜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이 말씀은 단순한 고통의 외침이 아닙니다.
시편 22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고 계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고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탄도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실패라고 부르는 그 자리에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부활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한순간도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억울한 시간.
기다려도 응답이 없는 시간.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시간.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깊이 일하고 계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까지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도 우리에게는
"언제까지입니까?"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끝내지 않았다."
하박국은 처음에는
"언제까지입니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환경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문제의 답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기다림이 끝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소망은
문제가 빨리 끝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도
"언제까지입니까?"
를 묻고 계십니까?
그 질문을 멈추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 질문보다 더 크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는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가장 선한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언제까지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며 우리도 하박국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때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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