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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것이 복음입니다

by Church, The Bridge 2026. 7. 4.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탕자의 비유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탕자는 언제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했을까요?
돼지우리를 벗어난 뒤였을까요?
돈을 다시 모은 뒤였을까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한 뒤였을까요?
아닙니다.
탕자는 여전히 돼지우리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배를 채울 음식조차 없었습니다.
몸에서는 냄새가 났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내세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15:20)
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의 형편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품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내치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품꾼 하나도 굶기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탕자의 발걸음을 움직인 것은 자신의 변화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복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먼저 자신을 고치려고 합니다.
조금 더 착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다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는 우리의 형편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먼저 인간을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정죄하기보다 품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보다 자신의 은혜가 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람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회개도 자신의 실패를 오래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줍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분의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죄인을 찾으시는 하나님.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사랑을 완성하신 하나님.
그래서 성경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을 알면 회개가 시작되고,
하나님을 알면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깁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편을 보고 걸음을 옮긴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멀리 있을 때 달려가 안아 주셨고,
아무 조건 없이 아들로 받아 주셨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먼저 변화시킨 뒤 하나님께 데려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될 때,
우리도 탕자처럼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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