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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by Church, The Bridge 2026. 7. 4.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이런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질문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커지는 것일까요?
목회가 성공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일까요?
저 역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역이 넓어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열매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길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더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완전하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영광을 받으실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할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로마서 4:20)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한복음 17:4)
예수님은 기적보다 순종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셋째, 성령의 열매가 삶에 나타날 때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요한복음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는 숫자가 아닙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넷째,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예배만이 아닙니다.
식사도.
일도.
가정을 돌보는 일도.
운전도.
사람을 대하는 말과 태도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만드셨습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이사야 43:7)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첫 번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린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성경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설교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광야로 나왔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사람들은 하나둘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님께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사역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 예수님께 가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가장 기쁜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이 한마디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무엇인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
내 사역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
내 성공보다 한 영혼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결국 내가 얼마나 큰 사람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이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건물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사역이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작아질수록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높아지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기쁨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이며,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며,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것.
그보다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한 영혼을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는 삶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한마디는 세례 요한의 고백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을 통해 오늘도 자신의 영광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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