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아직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마침내 돼지우리에 앉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했고, 재산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까지 허비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가 집을 떠났기 때문에 비참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아버지를 떠난 순간부터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바로 그 마굿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탕자의 회개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어떻게 회개했는지, 얼마나 깊이 뉘우쳤는지, 얼마나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충분히 반성하면 하나님께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탕자가 마굿간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지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자기 인생을 회복할 능력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계신다."
사실 마굿간에서 중요한 것은 집으로 가는 지도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아직 기다리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탕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결단입니다. 그러나 그 결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아들이 아버지를 발견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발견합니다.
아들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집 밖으로 나옵니다.
아들이 자신을 설명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안아 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결국 탕자의 결단은,
"내가 아버지께 가야겠다."
이지만,
복음의 본질은,
"아버지가 이미 아들을 맞으러 나오셨다."
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굿간에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는 실패의 마굿간에, 누군가는 상실의 마굿간에, 누군가는 죄의 마굿간에, 누군가는 외로움과 절망의 마굿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갈 수 있을까?"
그러나 복음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만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먼저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우리가 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길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만이 남아 계심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때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탕자는 마굿간에서 아버지를 발견했습니다.
늙은 다윗은 시편 71편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그는 자신의 능력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었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도 인생의 마굿간에 앉아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버지는 아직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에게 오실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지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신다는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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