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6 위조된 각인 나들목교회 김형국목사님이 2021년에 출판한 책 제목입니다.책은 김형국목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진실한 질문은 진실한 답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김형국목사의 좌우명이다.그리고 "부끄러운 교회 모습에 등 돌리려는 당신에게""안따까운 교회 모습을 부여안고 원래 모습을 각인하려 몸부림치는 당신에게"이렇게 책은 시작됩니다.국어사전에 각인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각인 1 [刻印] 명사(1) 어떤 사건이나 느낌이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뚜렷하게 기억됨.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삶에 대한 인간의 열망으로 나에게 각인이 되었다.어린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대상을 부모로 각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저에게 각인된 교회의 모습이 성경적인지 질문을 던진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니 어쩌면 더 본질적인 질문.. 2026. 4. 4.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살아가며 삶의 현장에서 열심을 내어 살고 있는 장애우들을 보면 왠지 감사해집니다.. 열심을 낼 뿐만 아니라 미소 지으며 행복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속 깊이 감동이 몰려옵니다. 왜냐고요 그냥입니다 제가 도서관에 갈 때마다 감사해지는 이유 중에 하나 이기도 합니다.당신의 열심으로 오늘도 저는 깨끗한 도서관을 이용합니다. 당신들의 미소와 행복은 저에게 희망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일기처럼 칼럼을 써 보려고 합니다. 제 삶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시고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써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감사의 안경을 끼고 순간순간을 보며 누려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2026. 4. 2.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월엔 아침미다 동탄의 끝에서 끝을 달렸습니다. 4월의 첫날인 오늘은 오산의 끝에서 끝을 달렸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알리스터 베그(Alistair Begg)의 "Preaching of the Cross"를 들으며 달렸습니다. 3시간 정도를 달리며 들어는데 잘 듣지 못한 부분이 있어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듣고 있습니다. 강의 끝 부분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에 대한 내용이 있어 집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찬양을 들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생각하며 듣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바이올린 연주는 오랬동안 묵혀둔 저의 눈물을 쏟아내게 했습니다.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바이올린 연주와 강의 내용을 공유해 봅니다.https://youtube.com/watch?v=qqja_1qwTGw&si.. 2026. 4. 1. 렘브란트의 돌아 온 탕자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로 바꾸어 본다면 어떨까요. 탕자가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를 묵상하기보다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묵상하는 것이 더욱더 큰 유익인 듯합니다.내가 얼마나 못난는지를 아는 것으로는 절대 아버지께 못 돌아옵니다. 오직 우리가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크신지, 온유하신지, 자비로우신지 등 등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알지 못해도 그분이 아버지라는 것..., 절대 그러실리 없지만 설령 그분이 날 버리셨다 해도 찾아간 날 외면한다 해도 그분만이 아버지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당신은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감상하.. 2026. 3. 31. 오늘은 요런 곳에 도서관을 오가며 한 번쯤 앉아 보고 싶은 자리에 오늘 처음으로 앉아서 한 것이라 곤 한 시간쯤 침 흘리고 졸다 아니 자다 깨어 사랑하는 아내가 준비해 준 토스트를 먹고 2월에 출판된 아주 뜨끈 뜨근한 책 한 권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제가 앉은자리는 책을 선택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곳에 있습니다. 타인에게 엄청 노출되는 곳이죠. 오늘은 버스의 앞자리에 앉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간섭하고 싶은 날입니다. 버스의 맨 뒷자리에서 누가 볼까 고개 숙이고 있었던 제가 자리를 앞으로 옮기는 날입니다.자리가 비어 있지 않아 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심적인 부담감 때문에 앉지 못했다는 것이겠죠. 그런 제가 이제 맘 편하게 자리를 옮겨 늘 앉아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들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 2026. 3. 31. 어느 편에 설것인가? 비겁한 선택어제는 제가 속한 팀의 팀원 중 한 명이 제거(?) 되었습니다. 퇴사라는 말보다는 제거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듯하여 제거(자신의 뜻이 아닌 타인에 의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저는 어제 선택의 순간에 망설임 없이 아주 당당하게 비겁함을 선택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선택해야 했던 비겁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제가 속한 팀의 팀장이 자신의 업무적 실수를 팀원인 K씨에 전가하여 K씨가 퇴사하게 되는 사건이 저의 일상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일어난 이 정의롭지 못한 사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나가는 K씨를 편들거나 동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은 모든 사람들은 작당이라도 한 듯 팀장편에 서서 K씨를 비난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K씨가.. 2026. 3. 19.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