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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버스가 좋아졌습니다

by Church, The Bridge 2026. 7. 2.


사람을 많이 태우는 차

제가 제 차를 소유한 지도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젊은 신학생 시절에는 티코를 탔습니다. 그 후로도 마티즈, 타우너, 다마스, 스파크 같은 작은 차들을 주로 탔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중고차였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던 시절에는 몇몇 목사님들이 사용하시던 차량을 물려받아 교회 차량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스타렉스와 그레이스 같은 승합차들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차들은 제 차라기보다 교회의 차였고, 사역을 위한 차였습니다.
교회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는 성도들이 그랜저를 구입해 주었습니다. 처음 중고로 구입했던 그랜저를 포함하면 10년 가까이 그랜저를 운행했던 것 같습니다. 장거리 사역을 떠날 때면 "목사님,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하며 자신의 차를 빌려주던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BMW 740Li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의 자동차에는 늘 누군가의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역을 내려놓은 후에는 개인 소유의 그랜저를 운행하다가 지금은 16년 된 마티즈를 타고 있습니다.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는 스타렉스도 있었고, 스포티지도 있었고, 그랜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승합차보다는 승용차를 이용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혼자 움직이는 시간이 많아졌고, 저도 모르게 승용차에 익숙해졌습니다.
차를 바꿀 때마다 자연스럽게 승용차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하고.
편하고.
혼자 있기 좋은 차.
어쩌면 차가 바뀐 것이 아니라 제 삶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출퇴근 버스를 운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2월 어느 날 엄청난 폭설이 내렸습니다. 평소라면 저녁 8시면 집에 도착해야 하는 날이었지만, 그날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회사를 나와 눈 때문에 중간에 멈춰 선 버스까지 걸어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낯선 나라의 폭설 속을 걸어 버스에 도착했지만 버스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눈은 계속 내렸고 도로 위의 차량들은 모두 멈춰 서 있었습니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이 버스에서 내려 내리는 눈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따라 내렸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버스 밖으로 나와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눈싸움을 했고.
누군가는 눈 위에 누웠고.
누군가는 서로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으며 웃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할 버스는 멈추어 있었지만, 그 멈춤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잠시 쉬어 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오랫동안 승용차 안에 혼자 있었습니다.
혼자 운전했고.
혼자 이동했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편해졌고, 그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멈춰 선 버스 밖에서 저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멈출 줄 모르던 저를 폭설이 멈추게 했고, 사람들은 저를 다시 사람들 속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한국에 왔을 그들에게도 그날의 폭설은 작은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야 하는 삶 속에서, 멈춰 선 버스 안과 눈 내리는 버스 밖은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휴게소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차를 바꾸게 된다면 버스나 승합차를 사고 싶다고.
버스는 사람을 많이 태우는 차입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태우고.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태우고.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함께 태우는 차입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도 버스와 닮았습니다.
나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타고.
상처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고.
인생의 속도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가는 곳.
젊을 때는 빠른 차가 좋았습니다.
좋은 차가 좋았습니다.
편한 차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많이 태우는 차가 좋아집니다.
혼자 편하게 가는 승용차보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승합차가 좋아집니다.
인생 후반전에는 사람을 많이 태우는 차를 타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느리게 가고.
조금 여유롭게 쉬어 가며.
함께 늙어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을 승용차가 아니라 버스로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혼자 빨리 가는 법보다 함께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16년 된 마티즈를 타고 다니는 지금도 가끔 그날의 폭설을 생각합니다.
멈춰 선 버스.
눈 속에서 웃던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의 온기.
인생 후반전에는 사람을 많이 태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사람.
조금 늦어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 제 인생이라는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할 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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