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정보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한 영혼을 보십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제는 만나기 전부터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하고,
지도에서 주소를 찾아보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남겨진 흔적들을 모아 그 사람을 미리 판단합니다.
그리고 만나기도 전에 결론을 내립니다.
'아, 이런 사람이구나.'
얼마 전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교회를 옮기게 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 홈페이지의 조회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목사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은 저를 만나기 전에 제가 누구인지 찾아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교회를 섬겼는지,
교회는 얼마나 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 정보들을 통해 저라는 사람을 미리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정보를 먼저 만납니다.
그리고 그 정보가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사람을 보셨습니다.
사무엘도 처음에는 사람의 외모를 보았습니다.
장남 엘리압을 보고 왕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
하나님은 다윗의 현재 모습을 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동이었던 소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충동적인 어부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기둥이 될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한 영혼으로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을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할 바울을 보고 계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현재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보셨습니다.
그래서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과거에 갇히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이나,
사람들이 덧씌운 평가를 넘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이것을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내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사람을 소문으로 결정하지 않는 것.
사람을 현재의 모습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
대신 하나님께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어쩌면 이것이 한 영혼을 사랑하는 첫걸음인지도 모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그 사람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셨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실패한 우리를,
넘어진 우리를,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현재를 보고 세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
정보보다 한 영혼을 먼저 보는 사람.
현재보다 하나님의 가능성을 먼저 보는 사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금도 빚어 가고 계시는 한 영혼으로 바라보는 사람.
그것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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