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름 없는 사람을 위해 - 세 번째 편지 본문
돌아가기 어려운 사람 (마 5:1-10)
그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쉽게 읽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당연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집을 떠난 것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를 묶어 두려 했고,
그를 피했습니다.
그는 사람들 곁이 아니라 무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성경은 그 시간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오래였는지,
가족이 있었는지,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해진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무덤 사이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함께 가게 해 달라고.
저는 그 장면을 읽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해서만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다시 시선을 마주해야 합니다.
다시 사람들 사이에 서야 합니다.
다시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가끔 인생에서 그런 시간을 만납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다시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려운 시간.
상처가 회복되는 것보다
다시 사람을 믿는 것이 더 어려운 시간.
혼자 있는 것보다
다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운 시간.
그 사람도 그랬을까요.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곁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집.
가장 익숙한 곳.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돌아가기 어려운 곳.
오늘 말씀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병든 사람보다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집으로.
관계로.
사람들 곁으로.
자기 자리로.
그래서인지 저는 오늘 광인보다
돌아가기 두려웠을 한 사람의 마음이 오래 남습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을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침묵이 좋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각자는 자기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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