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113)
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새벽에 함께 일하는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예순일곱입니다.처음 그 형님을 보며 제 마음에 떠올랐던 단어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만큼 약았고, 자기중심적이었고, 자신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일하다 보면 늘 손해 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누군가는 더 힘든 일을 하고 누군가는 조금 더 편한 자리를 찾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올해가 시작되며 형님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작년하고 올해가 달라. 늙는다는 게 해마다 달라."처음에는 그 말조차 핑계처럼 들렸습니다.또 늙음을 무기로 도움을 요청하는구나.조금 더 편하려고 하는구나.그렇게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문득 형님의 손을 보게 되었습니다.작년보다 느려진 손.예전보다 더딘 걸음.무거운 것을 들 때 ..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실 때 언제나 많은 사람보다 한 사람을 먼저 부르셨습니다.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셔서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모세 한 사람을 세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끄셨습니다. 다윗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고, 에스더 한 사람을 통해 한 민족을 지키셨습니다.하나님은 숫자보다 사람을 보셨습니다.세상은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을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세우시는 것으로 역사를 시작하십니다.왜 그럴까요?하나님께는 한 사람의 생명이 세상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도 언제나 한 사람에게 집중하셨습니다.니고데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밤늦도록 대화하셨고,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셨습니다. 세리 삭개오를 찾아가셨고, 병든 사람 한 사람의 손..
하나님이 좋아져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얼마 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짧은 글이었습니다.어떤 글은 기도 같았고,어떤 글은 묵상이었으며,어떤 글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 같았습니다.며칠 사이에 여러 편의 글을 연달아 올렸습니다.누군가는 왜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저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하나님이 좋아졌습니다.오랫동안 저는 하나님보다 사역을 더 크게 바라보았습니다.하나님보다 결과를 생각했습니다.하나님보다 열매를 바라보았습니다.잘해야 했고,증명해야 했고,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는 동안 어느새 하나님보다 사역이 더 중요해졌고,은혜보다 결과가 더 중요해졌으며,하나님을 전하는 일보다 잘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그러던 어느 ..
동탄에서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동탄의 아침은 분주합니다.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아이들,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들.새로운 도시는 늘 젊음을 이야기합니다.성공을 이야기합니다.성장을 이야기합니다.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이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워집니다.자녀는 성장했고, 직장은 정리를 준비하고,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나의 가장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 아닐까?""이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인생 후반전의 가장 큰 위기는 늙음이 아닙니다.자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세상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데 자신은 뒤에 남겨진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전혀 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도, 예루살렘 성전에도, 산 위에도, 길가에도 언제나 군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 계셨지만 언제나 한 사람을 만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종종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한 영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더 큰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열매라고 여기기도 합니다.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여리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한 사람에게 머..
늙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계절에 나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나를 향한 남은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것으로 적용을 시작해 보았습니다."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편드는 것이다.""잘하지 못해도."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편드는 것을 너무 자주 잘하는 것과 연결합니다.좋은 설교많은 사람성공적인 사역인정받는 목회영향력그러나 시편 71편의 다윗은 더 이상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늙었습니다.약해졌습니다.사람들은 그를 향해 말합니다."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 (시 71:11)그런데 바로 그때 다윗은 말합니다."내가 주의 힘을 전하기까지."이것은 놀라운 고백입니다.다윗은 말하지 않습니다."내가 다시 강해지게 하옵소서.""내가 다시 왕의 영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어쩌면 믿음이란 하나님 외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만이 남아 계심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많은 것을 제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만 남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제 인생의 쉼표, 그리고 쉼표 너머의 다음 문장입니다."저는 이제 하나님만 남아서 하나님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 좋아져서 다시 하나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안녕하세요.더브릿지교회 장경열 목사입니다.오랜만에 글을 업로드합니다.더브릿지교회 유튜브 채널의 모든 영상을 내리고 침묵했던 지난 3년 동안 제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여전히 제 인생은 진행형 태풍 속에 있습니다.하지만 태풍의 눈 속에는 고요..
예수의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으셨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침묵은 종종 사랑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몰아붙일 때, 함정에 빠뜨리려 할 때, 혹은 상처 입은 사람이 자기 마음을 겨우 드러낼 때, 그분은 언제나 즉시 설명하거나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보시는 침묵이었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폭력과 오해 앞에서 자신을 급히 증명하지 않는 침묵이었고,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이 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침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침묵은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상대를 견디는 침묵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적절한 말을 빨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두려움과 상처를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조급하지 않..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얻는 '여유'는 단순히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결과의 책임자가 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할 때 찾아오는 영적인 배짱이자 평안입니다.불안은 "내가 이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나는 최선을 다해 다리를 놓지만(Planting), 그 다리 위로 사람을 건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Harvesting)'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과의 통제권을 반납할 때 생기는 여유입니다.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을 하나님께 '아웃소싱'하십시오.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해 잠을 이룰 수 있는 힘, 그것이 신뢰가 주는 가장 실제적인 여유일 것입니다.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
나들목교회 김형국목사님이 2021년에 출판한 책 제목입니다.책은 김형국목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진실한 질문은 진실한 답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김형국목사의 좌우명이다.그리고 "부끄러운 교회 모습에 등 돌리려는 당신에게""안따까운 교회 모습을 부여안고 원래 모습을 각인하려 몸부림치는 당신에게"이렇게 책은 시작됩니다.국어사전에 각인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각인 1 [刻印] 명사(1) 어떤 사건이나 느낌이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뚜렷하게 기억됨.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삶에 대한 인간의 열망으로 나에게 각인이 되었다.어린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대상을 부모로 각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저에게 각인된 교회의 모습이 성경적인지 질문을 던진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니 어쩌면 더 본질적인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