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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가장 먼저 예배를 잃어버립니다.그리고 예배를 잃어버리면,하나님께 돌아오는 길도 잃어버립니다.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갈멜산에 모인 백성들은 더 이상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엘리야는 그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그들의 문제는 가뭄이 아니었습니다.바알이 강해서도 아니었습니다.무너진 예배였습니다.그런데 엘리야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참 놀랍습니다.그는 하늘을 향해 불을 내려 달라고 외치지 않았습니다.먼저 조용히 무너진 제단 앞으로 걸어갔습니다.성경은 짧게 기록합니다."엘리야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니라."(열왕기상 18:30)저는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래 머뭅니다.왜 제단이 무너져 있었을까요?누군가 하루아침에..
예배는 무엇으로 시작될까요?찬양일까요.기도일까요.말씀일까요.성경은 조금 다른 대답을 합니다.예배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이사야는 이미 선지자였습니다.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고,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사야를 다시 성전으로 부르셨습니다.왜였을까요?사역자는 되어 있었지만,하나님은 그를 예배자로 다시 세우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나라를 붙들어 주던 왕이 사라졌습니다.사람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세상의 빈 왕좌를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대신 하늘의 보좌를 보여 주셨습니다."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이사야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하나님이었습니다.생각해 보면..
예배는 언제 무너질까요?교회에 가지 않을 때일까요.기도를 하지 않을 때일까요.성경을 읽지 않을 때일까요.우리는 예배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먼저 행동을 떠올립니다.그러나 성경은 예배가 행동보다 훨씬 먼저 무너졌다고 말합니다.예배가 처음 무너진 곳은 성전이 아니었습니다.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눈물도 없었고,죽음도 없었으며,고통도 없었습니다.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걸으셨습니다.인류가 경험한 가장 완전한 예배의 자리였습니다.예배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였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뱀이 하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이 질문은 단순히 말씀을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
저는 이 프롤로그를 쓰며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지난 8년은 사역의 공백기가 아니었습니다.예배학교였습니다.그리고 이 연재는 그 학교에서 하나님께 직접 배운 것을 나누는 기록입니다.하나님께서 제게 다시 가르쳐 주신 예배지난 8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이었습니다.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야 했고,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실을 살아야 했습니다.처음에는 그 시간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왜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 길로 인도하셨을까.왜 이렇게 오랫동안 멈추게 하셨을까.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로 보내셨을까.그 질문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새벽을 달려야 했고,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몸은 지쳐 갔고,마음은 사람들의 오해와 평가 앞에서 무너지기도 했..
요즘 제 기도의 중심에는 한 가지 간구가 있습니다."주님, 더브릿지교회의 예배를 회복시켜 주십시오."그런데 기도할수록 한 가지 질문이 제 마음을 붙잡습니다.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회복하실까?우리는 회복을 생각하면 먼저 환경을 떠올립니다.예배당이 채워지고,찬양이 살아나고,교회가 다시 활기를 찾는 모습을 기대합니다.하지만 성경은 예배의 회복을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합니다.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그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스랍들은 끊임없이 외쳤습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이사야는 가장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곧바로 사명을 맡기지 않으셨..
예배를 회복하고 싶습니다.요즘 제 기도의 중심에는 이 한 문장이 있습니다."주님, 제 안에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시켜 주십시오."기도를 드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회복하실까.학개서를 읽으며 그 답을 조금씩 찾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성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기초도 놓았습니다.그런데 어느 순간 성전 공사는 멈추었습니다.사람들은 각자의 삶에 바빠졌고,자기 집을 꾸미는 일은 계속했지만 하나님의 집은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보내셨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먼저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하나님은 무너진 건물보다 먼저 무너진 마음..
억울한 일을 당하면 기도의 내용도 달라집니다.하나님께 상대를 바꿔 달라고 기도합니다.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진실을 밝혀 달라고 기도합니다.물론 그런 기도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깊은 기도를 보여 줍니다.한나를 생각해 봅니다.그녀는 자녀가 없었습니다.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질 일이었습니다.그런데 브닌나는 매년 그 상처를 들추었습니다.말로 찌르고,비웃고,한나가 울 때까지 괴롭혔습니다.얼마나 억울했을까요.그런데 성경은 한나가 브닌나와 싸웠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복수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한나는 성막으로 들어갔습니다.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사람들은 한나의 기도를 듣지 못했습니다.입술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한나의..
사람은 답을 찾으며 살아갑니다.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왜 나는 이 사람을 만나야 했는지.왜 기다림은 길고, 응답은 늦은지.왜 어떤 사람은 쉽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늘 힘겨운 길을 걷는지.우리는 질문을 붙잡고 살아갑니다.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쌓습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됩니다.질문 하나에 답을 얻으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는 것을.성경에도 평생 하나의 질문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사람들은 그를 보며 질문했습니다."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입니까, 부모입니까?"사람들은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누구의 잘못인지,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답을 찾고 싶었습니다.그런데 ..
사람은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답을 찾기 시작합니다.조급한 사람은 더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고,분노한 사람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을 찾습니다.가면을 쓴 사람은 더 완벽한 모습을 만들려고 애쓰고,공허한 사람은 또 다른 목표를 세웁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됩니다.문제를 해결해도 마음은 그대로라는 사실을.성경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실망했습니다.희망을 잃었습니다.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오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이 장면이 참 놀랍습니다.예수님은 곧바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그리고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그들은 길을 걸으며 ..
분노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노보다 먼저 찾아오는 생각이 있습니다.'내가 지금 속고 있다.''내가 지금 이용당하고 있다.''나만 손해 보고 있다.'그 생각이 마음을 붙잡는 순간,분노는 순식간에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그때부터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모든 말이 공격처럼 들리고,모든 행동이 의도적으로 느껴집니다.분노는 사건보다 해석에서 시작됩니다.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요나입니다.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용서하셨습니다.그러자 요나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신기합니다.악한 도시가 회개한 것은 기뻐할 일인데,요나는 분노했습니다.왜였을까요?자신이 틀린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자신의 정의가 무너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무엇보다 자신이 손해 봤다고 느꼈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