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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동탄에서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동탄의 아침은 분주합니다.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아이들, 바쁘게 움직이는 차량들.새로운 도시는 늘 젊음을 이야기합니다.성공을 이야기합니다.성장을 이야기합니다.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이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워집니다.자녀는 성장했고, 직장은 정리를 준비하고,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나의 가장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 아닐까?""이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인생 후반전의 가장 큰 위기는 늙음이 아닙니다.자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세상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데 자신은 뒤에 남겨진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전혀 다..
마른 가지가 되지 않으려면요한복음 15장 6절"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종종 두려워합니다.버려진다는 말 때문입니다.마른다는 말 때문입니다.불에 던져진다는 말 때문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묻습니다."나는 버림받는 것인가?""나는 구원을 잃는 것인가?"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예수님은 가지가 왜 마르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가지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가지는 열매를 만들 수 없습니다.가지는 스스로 생명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가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붙어 있는 것입..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에도, 예루살렘 성전에도, 산 위에도, 길가에도 언제나 군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 계셨지만 언제나 한 사람을 만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종종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한 영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더 큰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열매라고 여기기도 합니다.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여리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한 사람에게 머..
늙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계절에 나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나를 향한 남은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것으로 적용을 시작해 보았습니다."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편드는 것이다.""잘하지 못해도."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편드는 것을 너무 자주 잘하는 것과 연결합니다.좋은 설교많은 사람성공적인 사역인정받는 목회영향력그러나 시편 71편의 다윗은 더 이상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늙었습니다.약해졌습니다.사람들은 그를 향해 말합니다."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 (시 71:11)그런데 바로 그때 다윗은 말합니다."내가 주의 힘을 전하기까지."이것은 놀라운 고백입니다.다윗은 말하지 않습니다."내가 다시 강해지게 하옵소서.""내가 다시 왕의 영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아직 하나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편 71:18)시편 71편 18절의 중심은 "노년"도 아니고, "사역의 회복"도 아닙니다 그것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여전히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며, 그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 마침표를 찍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를 만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시편 71편의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젊은 시절의 다윗이 아닙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던 청년이 아닙니다. 왕이 되어 모든 것을 이루었던 영광의 다윗도 아닙니다.시편 71편의 다윗은 늙었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합니다.“하나님..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아직 기다리고 계십니다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마침내 돼지우리에 앉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했고, 재산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까지 허비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가 집을 떠났기 때문에 비참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아버지를 떠난 순간부터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복음은 바로 그 마굿간에서 시작됩니다.우리는 종종 탕자의 회개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어떻게 회개했는지, 얼마나 깊이 뉘우쳤는지, 얼마나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렇게 생각합니다."내가 충분히 반성하면 하나님께 갈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탕자가 마굿간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지도가 아니..
어쩌면 믿음이란 하나님 외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만이 남아 계심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많은 것을 제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만 남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제 인생의 쉼표, 그리고 쉼표 너머의 다음 문장입니다."저는 이제 하나님만 남아서 하나님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 좋아져서 다시 하나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안녕하세요.더브릿지교회 장경열 목사입니다.오랜만에 글을 업로드합니다.더브릿지교회 유튜브 채널의 모든 영상을 내리고 침묵했던 지난 3년 동안 제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여전히 제 인생은 진행형 태풍 속에 있습니다.하지만 태풍의 눈 속에는 고요..
예수의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으셨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침묵은 종종 사랑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몰아붙일 때, 함정에 빠뜨리려 할 때, 혹은 상처 입은 사람이 자기 마음을 겨우 드러낼 때, 그분은 언제나 즉시 설명하거나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보시는 침묵이었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폭력과 오해 앞에서 자신을 급히 증명하지 않는 침묵이었고,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이 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침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침묵은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상대를 견디는 침묵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적절한 말을 빨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두려움과 상처를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조급하지 않..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얻는 '여유'는 단순히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결과의 책임자가 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할 때 찾아오는 영적인 배짱이자 평안입니다.불안은 "내가 이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나는 최선을 다해 다리를 놓지만(Planting), 그 다리 위로 사람을 건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Harvesting)'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과의 통제권을 반납할 때 생기는 여유입니다.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을 하나님께 '아웃소싱'하십시오.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해 잠을 이룰 수 있는 힘, 그것이 신뢰가 주는 가장 실제적인 여유일 것입니다.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
나들목교회 김형국목사님이 2021년에 출판한 책 제목입니다.책은 김형국목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진실한 질문은 진실한 답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김형국목사의 좌우명이다.그리고 "부끄러운 교회 모습에 등 돌리려는 당신에게""안따까운 교회 모습을 부여안고 원래 모습을 각인하려 몸부림치는 당신에게"이렇게 책은 시작됩니다.국어사전에 각인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각인 1 [刻印] 명사(1) 어떤 사건이나 느낌이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뚜렷하게 기억됨.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삶에 대한 인간의 열망으로 나에게 각인이 되었다.어린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대상을 부모로 각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저에게 각인된 교회의 모습이 성경적인지 질문을 던진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니 어쩌면 더 본질적인 질문..
